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한 대형마트 2위 업체 홈플러스발 파장이 영농 현장에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홈플러스와 주 거래하는 지역농협과 영농조합에 대금 정산이 지연되고 있고, 이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해 출하도 머뭇거리고 있다. 더욱이 당장 새 판로를 개척하기 어렵고, 저장성도 길지 않은 신선식품을 처리해야 해 산지의 답답함이 가중되고 있다.
이마트·롯데마트와 더불어 3대 대형유통업체로 꼽히는 홈플러스는 지난 4일 회생절차를 신청, 서울회생법원이 같은 날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이후 전자업체나 가공업체에서 납품 중단을 선언하는 곳이 나오고 있다.
특히 농산물 산지는 이들 공산품·가공업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우선 산지의 홈플러스 출하 비중이 상당하다. 당장 농협경제지주 도매부를 통해 납품되는 금액만 연간 1900억원 가량에 이른다. 여기에 농협경제지주 계열사인 농협목우촌을 비롯해 홈플러스와 직접 거래하는 지역 농협과 영농조합법인 등도 많다. 저장성이 긴 제품을 처리하는 공산품·가공업체들과 달리 농축산물 등 신선식품은 출하를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 본보가 6일 몇몇 지역농협과 영농조합법인을 취재한 결과 대금 정산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한 지역농협 산지유통 담당자는 “3월 4일에 대금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들어올 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고 있다”며 “우린 생산 물량의 30~40%를 홈플러스에 납품하고 있는데, 당장 출하처를 확대하기도 힘들고 저장성이 길지 않은 신선식품 특성상 출하도 미룰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홈플러스에 출하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산지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나흘 전인 2월 28일부터 대규모 행사인 홈플런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불과 나흘 만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어안이 벙벙하다”며 “다른 납품업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지에선 대기업인 홈플러스가 대기업보단 농업인과 소상공인에 대금 결제 등을 먼저 해결해 줘야 한다고 촉구한다.
지역의 한 농협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농업인과 소상공인에 우선적으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홈플러스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따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가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진행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은 홈플러스 사태로 농업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어기구 국회 농해수위원장은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판매 대금을 못 받고 있다는 신고가 의원실로 들어오고 있다”며 “제2의 위메프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농림축산식품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며 피해 발생 현황 파악과 대책 마련을 철저히 해 달라”고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에게 당부했다.
이에 송 장관은 “파악하고 있다. (농업계에 피해가 없도록) 잘 살피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판로 다각화와 농산물 유통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의 제언도 하고 있다.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에서 홈플러스를 지원해 주고 납품업체들도 정상적으로 납품하면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은데, 문제는 정부가 지원해 줄 여건이 될지 모르겠고, 벌써 일부 납품업체들은 상품을 빼고 있어 악순환이 이어지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최근 유통이 빨리 변화하고 있고 다른 대형마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판로 다각화를 위해 현재로선 온라인 유통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고 퀵커머스 유통 등 성장이 예측되는 곳에 납품을 늘려야 한다. 다만 농산물은 물류 등의 어려움으로 온라인 유통에 한계가 있기에 정부가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농산물 온라인 쪽에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홈플러스는 6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회생절차 개시로 금융채무가 유예됐으나, 현재 홈플러스의 현금 창출력과 소유부동산(감정가액 4조7000억원)을 고려할 때 현금수지는 곧 개선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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