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에 생산 비용을 반영해 이상기후 등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구축하려는 구상을 발표하고 법제화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농가들도 생산비에 못 미치는 농산물 수취가격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잦아 일본 사례가 각별한 관심을 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2월7일 ‘식량·농업·농촌 기본계획(안)’을 공표하고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기본계획은 지난해 5월 개정된 ‘식량·농업·농촌 기본법’에 근거해 마련하고 있는 중장기 농정 전략이다.
이번 계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식량안보 강화방안을 구체화한 부분이다. 농림수산성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식량안보와 지속적인 식량시스템 구축’을 기본계획에 명시하고, 세부 정책의 하나로 ‘합리적인 가격 형성’을 제시했다. 폭넓은 농산물 품목에 대한 비용구조 실태조사를 수행한 뒤 생산 비용을 고려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비용지표의 작성·활용을 전제로 제시했다. 명확한 생산 비용을 파악하면 농식품 가격에 생산비가 반영될 수 있도록 생산·가공·유통·소매 등 식량시스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간 합의 구축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농림수산성은 이같은 계획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강제성도 부여할 계획이다. 판매자에게는 적정한 가격에 거래하는 ‘노력 의무’를 부과해 구매자 측에게 생산 비용 등을 성실히 설명하도록 하고, 구매자는 판매자로부터 가격 검토 등 제의가 있을 경우 성실하게 응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특히 노력 의무에 해당하는 ‘행동 규범(판단 기준)’을 성문화해 거래 당사자에게 지도·조언이 이뤄지도록 하고, 이에 대처가 미흡하면 권고·공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추진한다.
현재 농림수산성은 우유·두부(낫토)·쌀·채소 등 4개 품목의 비용과 거래 실태를 검증해 이해관계자들과 비용지표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 또 이런 규제가 실행될 수 있도록 ‘식품 등의 유통의 합리화 및 거래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달 중 의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에토 다쿠 농림수산상(장관)은 2월7일 기자회견에서 “농가들이 자신이 생산한 상품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그것이 소득 향상으로 이어져 생산기반을 지키는 식으로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생산비 상승이라는 어려움을 동일하게 겪는 한국 농업계에서도 일본 정부의 생산기반 유지 노력을 참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전찬익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전 경쟁시장에 노출돼 있는 농산물 특성상 대형화한 소비지가 가격 결정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생산비 보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농가들의 생산 의욕이 꺾이는 만큼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의 유통 전문가들은 대책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후지시마 히로지 도쿄세이에이대학 교수는 “이번 법제화 움직임은 생산자가 생산비를 포함한 가격을 수취하도록 해 실질적인 소득 상승이 일어나도록 하려는 목적”이라며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형성을 넘어 거래가격을 강제화하는 내용은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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