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곡강리에서 농민이 포항초를 다듬고 있다. 지리적표시제 등록 농산물인 포항초가 도시 개발에 밀려 재배면적이 급감했다.
‘지리적표시제’ 명성 얻은 농산물
잇단 개발로 재배지 갈수록 감소
농가들, 대체 농지 확보 어려워
브랜드 가치·생산기반 붕괴 우려
농민신문 포항=김다정 기자, 부산=이선호, 고양=오현식 기자 2025. 3. 4
“이 동네에서 올해는 우리집밖에 출하 못합니더. 그나마 우리도 이게 여기서는 마지막이라예.”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곡강리에서 포항초를 재배하는 권경동씨(75)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포항초 중에서도 유난히 향이 짙고 색이 선명해 최고 품질로 치던 ‘곡강시금치’의 명맥이 끊긴다고 생각하자 허탈함과 답답함이 밀려와서다.
포항초는 포항에서 자라는 시금치로, 시금치에 지역명을 붙인 최초의 사례이자 시금치를 단으로 묶어 판매하는 유통체계를 처음으로 선보여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졌다. 2014년 지리적표시제 등록을 마친 명실상부한 ‘포항 대표 농산물’이기도 하다.
‘포항초’의 명성에 농가들도 신이 났었다. 포항초가 고소득 효자 작목의 몫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권씨는 “서울 가락시장에서도 다른 시금치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은 값을 받으면서도 없어서 못팔 정도였다”며 “이 마을에서만 시금치로 수천만원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여럿 있었고, 억대 농부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한때 전국 시금치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포항초는 포항시 개발로 10년 전쯤부터 2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최근엔 곡강리 등이 포항시 영일만4산업단지 개발에 편입되며 재배면적 감소에 가속이 붙은 상황이다. 실제로 지리적표시제 등록 당시엔 350㏊ 이상에 달하던 포항초 재배면적이 2024년 기준 202㏊로 줄어들었다. 10년 새 150㏊가 없어진 셈이다.
포항초를 수탁판매하는 흥해농협 관계자는 “포항초 수탁판매 실적은 2012년엔 13억원 이상이었으나 2024년엔 1억3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개발로 명맥을 이어가기 힘든 사례는 비단 포항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 강서구 대저1·2동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대저토마토’ 역시 2012년 부산지역 최초로 지리적표시제 등록에 성공한 명품 농산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대저2동이 한국수자원공사와 부산도시공사가 진행해온 신도시 개발사업인 ‘에코델타시티’ 대상지로 포함돼 토지 수용 절차를 밟고 있다. 이곳의 농가들이 ‘대저토마토’를 계속 재배하려면 대저동 일대 중 개발부지로 묶이지 않은 곳에 새 농지를 마련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농사에 적합한 토지 상당수가 이미 사라진 데다 남은 땅도 이런 틈을 타 지가가 크게 뛰면서 구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저2동에서 2만3140㎡(7000평) 규모로 토마토를 재배하는 후계농 배명훈씨(43)는 “4~5년 전에도 도시 개발로 3.3㎡(1평)당 40만∼50만원 정도 하던 농지가 최고 100만원까지 치솟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면서 “‘대저토마토’ 브랜드를 믿고 귀농했는데 이제는 차라리 ‘대저토마토’ 브랜드를 포기하고 김해 쪽에 새로 농장을 마련하는 걸 고민 중”이라고 한탄했다.
경기 고양에서는 신도시 등 개발 사업이 지속되면서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된 ‘일산 열무’ 생산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장순복 지도농협 조합장은 “해마다 각종 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합원들이 언제 농지가 수용될지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특히 넓고 평평해 농사짓기 좋고 토질이 비옥한 우량 농지가 신도시나 아파트단지 부지로 대거 수용되고 있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지리적표시제 농산물의 유산이 흔들리는 것에 농가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재배 노하우와 민관의 노력으로 전국적 명성을 떨치는 농산물 반열에 올라섰지만 거대한 개발압력에 미래가 불투명한 탓이다.
권씨는 “농지만 있으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농사를 지을 사람들인데, 농지는 물론 농업소득에 대한 보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대다수의 농가가 다른 지역에 농지를 구하려면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포항초 생산은 급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저농협 관계자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농가를 위해 ‘으뜸토마토’란 상표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있지만 아직 소비자 인식이 낮아 ‘대저토마토’만 한 가격은 나오지 않고 있다”며 “부산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된 ‘대저토마토’의 브랜드 가치가 너무 쉽게 위협받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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