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도 2차 피해 우려…도라지 생산기반 흔들
김치 관세 낮아져 수입증가…채소류까지 타격
인삼차·음료 관세철폐…생산농 소득기반 악화
정부는 1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결과를 설명하면서 “주요 신선농산물은 개방 대상에서 빼고 대중(對中)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도 저율할당관세(trq) 설정이나 부분감축을 통해 개방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 신선농산물의 경우 fta 타결 이전에도 이미 국내 시장을 사실상 점령하고 있었던 만큼 결코 낙관할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 김치·기타 소스(다대기)·인삼음료·땅콩가공품 등 중국산 가공식품의 안방 공세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신선농산물
도라지·송이버섯(냉동) 등 일부 품목의 관세가 줄어들어 해당 농가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도라지는 국내 농업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식재료 외에 한약재로도 널리 이용되는 품목이다. 현행 관세(27%)를 물고서도 중국산 도라지는 지난해 1만1000t이 수입돼, 국내 생산량의 2배를 넘어섰다.
특히 중국산은 수입가격이 현재도 1㎏당 3500원 선으로 국산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협상 내용대로 관세가 20년에 걸쳐 철폐된다면 국내 도라지 생산기반은 붕괴 위기에 처할 것으로 관측된다.
바나나·망고·구아버·두리안 등 열대과일도 15년에 걸친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돼 국내 과일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망고·구아버 등 열대과일은 최근 제주와 전남 해남·여수,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국내 생산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재배농가들의 직접적인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일은 가격변동에 따른 소비대체성이 매우 강한 부류인 만큼 국내 과일 소비체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호진 농협가락공판장 본부장은 “한·미 fta 발효 후 오렌지 관세가 인하되면서 국산 감귤·딸기·참외 소비가 오렌지로 돌아서 결국 이들 품목의 가격이 크게 하락한 전례가 있지 않느냐”며 “중국의 경우 남부지방에서 두리안 등 열대과일이 많이 생산되는데 향후 이들 열대과일 수입이 크게 늘면 국내 과일농가들의 2차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신선농산물은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 공세를 비껴갈 수 있게 됐다. 주요 품목이 양허제외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서울 가락시장 등 농산물 유통가에서는 이번 타결 내용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관측되고 있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중 fta 협상은 나름 선방했지만, 중국산 농산물은 지금도 가공 등의 우회적인 수단을 통해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양허제외를 얻었다는 데 만족하기보다는 국산 농산물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가공식품
국가 대표식품인 김치가 예상 밖의 피해를 입게 됐다. 협상 결과대로라면 김치의 경우 현행 관세(20%)에서 10% 이내, 즉 최대 2%포인트가 감축된다.
그렇잖아도 요식업소 등을 중심으로 시장을 휩쓸다시피하는 중국산 김치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걱정되는 이유다.
지난해 국내에 반입된 중국산 김치(1억1740만달러어치)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모든 수입품 중 8번째로 많다. 김문호 (사)한국고추산업연합회장(경북 안동 서안동농협 조합장)은 “올 고추 생산량이 지난해와 견줘 30%나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가격은 여전히 지난해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고추가 많이 쓰이는 김치의 경우 중국산이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낮은 중국산 김치 반입가격이 더욱 낮아지면 국산 김치뿐만 아니라 주요 채소류도 설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대기 역시 기존 관세(45%)가 10% 이내(최대 4.5%포인트)에서 감축된다. 이에 따라 국내 양념채소류 소비시장을 더욱 깎아먹을 것으로 점쳐진다.
땅콩 가공품도 피해가 예상된다. 피넛버터(50%) 관세는 20년 내 철폐되고 조제저장처리된 것(63.9%)은 기존 관세의 10%인 6.39%가 5년 동안 균등 감축된다. 땅콩의 경우 현행 고율관세(230.5%)에서도 지난해 5175만달러어치가 수입됐고, 국내 수입땅콩의 81.4%가 중국산이다.
땅콩을 양허대상으로 분류했다고 환호할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산이 시장을 잠식한 품목의 경우 중국이 양허대상에서 제외해줌으로써 껍데기뿐인 명분만을 우리 측이 얻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삼류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삼류 가운데선 인삼차·인삼음료가 관세 철폐품목에 포함됐다. 8% 관세가 20년에 걸쳐 철폐되는 조건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지린성 정부는 ‘장백산 인삼 야생자원복원 프로젝트’와 ‘장백산 인삼’을 상표등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삼의 품질 고급화를 통한 일종의 수출 확대 전략인데, 중국으로서는 인삼차와 인삼음료를 시작으로 한국 인삼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재희·김소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