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지시마 히로지 도쿄에이대학 교수
[일본 농산물 유통전문가에게 듣다]
''닮은 듯 다른'' 두 나라…도매시장 역할변화 주목
공공성→효율성 중심 규제 완화
지방도매시장 통폐합 가속
완전 경쟁체제로 전환 중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025. 2. 7
일본 농산물도매시장이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산지와 소비지의 교섭력 확대에 따라 농산물 유통환경이 재편되면서 청과물 유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도매시장 경유율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와 닮은 점이지만 우리보다 앞서 벌어지고 있으며, 일본 도매시장이 기존과 다른 기능과 역할 모색을 통해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 도매시장의 변화 움직임을 추동하는 핵심축이 정부 정책이라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공공성 중심의 도매시장 정책에서 효율성 중심의 규제 완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2018년 도매시장법 개정, 2020년 6월 시행 이후 도매시장들은 자체적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경쟁력이 낮은 지방도매시장의 통폐합이 가속화되고 있고, 자본력이 우위에 있는 도매법인(중도매회사) 간의 합병을 통한 규모화가 추진되는 등 완전 경쟁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또한 법 개정으로 기존의 특정 거래참여자 차별적 취급 금지, 수탁거부 금지 등의 거래원칙은 큰 틀에서 공통으로 유지하면서도 기타 거래규칙인 상물분리, 제3자판매, 직접집하, 매수판매 등은 도매시장별로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제를 풀어주면서 도매시장 취급액 감소 추이가 최근 2~3년간 반등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법 개정에 따른 효과나 부작용이 도매시장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시점에서 정책 변화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더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일본 유통 관계자들의 분위기도 있다.
분명한 점은 일본 도매시장의 생존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령화, 기후위기에 따른 수급 불안 같은 변수가 현실화되고 있는 데다 지난해 트럭(화물) 운전기사들의 근무시간 제한 등을 골자로 한, ‘2024년 문제’라고 불리는 물류 분야의 새로운 제도도 시행되는 등 농산물 유통환경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 이상기후로 불거진 ‘금사과’ 사태에서 농산물 가격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가격 문제의 원인을 도매시장 유통단계 등 도매시장 내부 요인으로만 보는 근시안적인 인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일본 농산물 유통환경 변화와 일본 도매시장의 대응 전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만난 현지 유통 관계자들이 말하는 일본 농산물 유통의 변화와 시사점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인터뷰 - 후지시마 히로지 도쿄에이대학 교수]
후지시마 히로지 도쿄세이에이대학 교수는 일본 농산물 유통과 도매시장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도쿄농업대학에서 오랜 기간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했으며, 농림수산성의 도매시장 정책 자문을 하는 전문가 자문기구에 참여했다. 현재에도 일본 도매시장 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연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다양한 정책을 건의하는 등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한국 도매시장의 이해도도 상당히 깊은 석학이다. 지난해 12월 만난 후지시마 교수는 일본 농산물 유통환경 변화, 특히 도매시장법 개정 이후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관점을 제시했으며,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도매시장의 저장 기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규모 전업농 중심의 농업 구조 재편과 이들 위주의 계약재배 확대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 도매시장법 개정 이후 일본 도매시장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과거 도매시장은 중앙정부가 도매시장 시설 규모, 매출 달성까지 상당히 세세하게 규제를 했는데, 이제는 그런 규제를 안 하고 있다. 개설자에게 완전히 자율권을 줌으로 인해 시장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개설자 중에는 더 엄격하게 규제를 가하는 개설자도 있는가 하면 자유롭게 규제를 풀어주는 개설자들도 있어 법 개정에 따른 효과가 시장별로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격차가 좋은 의미로 벌어지는 것인지 나쁜 의미의 격차로 벌어지는 것인지는 법 개정 이후 3~4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좋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 도매시장 통폐합 등의 변화로 산지의 어려움은 없나.
“도매시장 법 개정 이후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영세농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도매시장 통폐합이 가속화되면 시장이 거점화되고 지역에 있는 작은 도매시장들이 없어질 수 있는데, 개별 영세농이 출하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식량 자급률이 높지는 않지만 그나마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영세농이 존재하는 부분을 부정할 수 없다. 대규모 전업농 중심으로 재편시키게 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조건불리지역’은 경영하지 않게 되고, 영세농들이 없어질 경우 농사를 짓지 않는 유휴 농지가 늘어나고, 생산량 감소와 자급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매시장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영세농의 판매 공간을 제공하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법 개정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일본은 산지가 잘 조직화돼 있다. 대규모 전업농 구조와 관련한 문제가 또 있을까.
“예를 들어 계약 재배 부분이 있다.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가공·외식업자를 경유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공·외식업자들은 대부분 농협처럼 조직화된 산지 주체나 대규모 전업농 중심으로 계약 재배를 확대한다. 대규모 전업농의 경우 계약 재배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계약 물량보다는 더 많이 재배하는 경향이 있는데, 작황 변동에 따라 계약 재배 물량보다 생산량이 변동될 수 있는데 계약재배 물량은 고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만약 생산량이 많아질 경우 계약재배 물량 외에 나머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곳이 도매시장이 된다. 이렇게 되면 도매시장 물량이 많아져 가격 변동 폭이 더 커지게 된다. 계약 재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부분의 수급 문제들이 부작용으로 발생해 오히려 수급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대규모 전업농만이 농업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하는데 제 생각은 조금 다르다. 대규모 전업농은 농업만 가지고 운영하기 때문에 가격에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반면 소규모 농가의 경우 겸업농이 많고 가격 민감도도 다소 떨어진다. 겸업농은 농외소득이 훨씬 많은 농가들이기 때문에 다소 가격이 안 맞는다고 농업을 포기하는 문제가 적다. 그런 면에서 보면 농업 경쟁력, 생산력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산지 규모화라는 부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규모화된 전업농과 영세한 겸업농의 적절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 일본의 가공채소 수요 증가가 커지고 있다. 신선채소 시장을 얼마나 대체하고 있는지.
“냉동 채소 시장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냉동 채소 1인당 소비량이 1.4kg였는데 2022년 현재 소비량이 23.9kg에 달한다. 20배 정도 늘었다. 문제는 냉동 채소 대부분이 수입 채소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지난 50년 동안 수입 채소도 거의 27배 정도 늘었다. 혼자 살거나 맞벌이하는 부부들이 냉동 채소들을 선호하고 있다. 이제는 냉동 채소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판매점이 늘어날 정도로 냉동채소의 천국이 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 간편식 냉동채소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집집마다 냉동고를 갖추는 것이 일상화됐다. 냉동 채소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신선채소가 비싸지면 냉동채소를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냉동채소 수율을 감안해 계산할 때 전체 신선채소 시장의 10%, 많게는 20% 정도가 냉동채소가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일본 정부는 냉동채소 시장이 확대되는 것이 대체 관계가 생기다보니까 오히려 수급도 안정화되는 현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 기후위기 문제로 생산 분야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도매시장이 어떤 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두 가지 측면을 얘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도매시장(법인) 간에 정보 교환을 밀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재고가 얼마인지, 거래하는 산지 재고가 얼마인지 이런 정보를 주변 시장들과 연계하면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정보에 근거해 서로 간의 물량 과부족을 물건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조절해 나가는 기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보 교환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자세의 문제도 있지만, 디지털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화 능력도 도매시장이 갖춰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는 도매시장의 저장·보관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시장에 해당되는 부분은 아니다. 오타 시장에 있는 동경청과와 같은 큰 도매법인은 수집 물량을 분산 판매할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저장 기능이 필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타시장 경우 중도매인들이 저장 기능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지방도매시장은 반입된 물건들이 한 번에 다 팔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장으로 돌리는 부분이 필요하다. 어떤 시장에, 어느 주체가 저장 기능이 필요한지는 추후 검토해 볼 문제이지만, 도매시장이 저장·보관 기능을 통해 수요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들이 앞으로는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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