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역지방자치단체 A도와 B도는 현행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농발계획)’에서 청년농, 차세대 인력 육성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큰 틀의 목표는 같지만 세부 계획은 상이하다. A도는 고령농을 대상으로 정부의 농지이양 은퇴직불금에 자체 지원금을 줘 농지 유동성을 확보하고, ‘농지·경영체 통합관리 시범사업’을 통해 농지를 규모화·집적화할 수 있는 경영체가 승계받도록 했다. 하지만 B도는 체계적인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 방안은 사실상 백지 상태다.
농업·농촌이 당면한 문제가 다양해지며, 지역이 스스로의 현안과 타개책을 진단하는 상향식 농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움직임의 근간이 될 지자체의 농발계획이 내용 없이 뼈대만 남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김종안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연합회장은 농정연구센터가 최근 서울 서초구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농발계획의 실효성이 사실상 상실된 상태”라면서 “부서별 사업을 단순 나열하거나 단체장의 공약 사항 위주로 수립되는 사례가 많아 지방농정의 기본·전략 계획이라는 당초 성격과는 괴리가 크다”고 꼬집었다. 농발계획은 광역·기초 지자체 등에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한다.
전문가들은 농업·농촌이 마주한 갈등을 봉합하려면 지방농정의 방향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본다. 농발계획 실효성 강화가 첫걸음이다.
김 회장은 “기술·자본 중심의 농정 기조 아래에서 농민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지역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나 소득의 상당 부분이 외부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한 예로 지자체에 들어선 스마트팜 등 대규모 혁신밸리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운영비를 지방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수혜자의 80∼90%가 외지인임에도 예산을 쏟는 게 맞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갈등을 어떻게 보고 풀어갈지, 지방농정이 담당할 역할과 기능은 무엇인지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농발계획이 유명무실해진 배경엔 졸속 수립이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지자체의 농발계획이 법정 제정 연도가 도래하기 직전에 연구 기관에 맡긴 용역 결과를 발표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입 모아 말한다. 형식적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계획일 뿐 실제 행정에 적용할 계획이 못된다는 것이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일본은 지역민들이 수차례 회의를 열고 계획을 세우는 데 반해 한국은 행정 편의적으로 빨리빨리 진행한다”고 했다.
대안의 하나로 읍·면 단위의 상설 회의체 설립이 언급된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 활동하는 일소공도 협동조합은 지역주민·공무원·연구자들이 협력해 연 530명이 참여하는 공동학습회를 열었다.
이후 주제별 간담회, 토론회 등을 거쳐 2020년 ‘장곡면 2030 발전계획’을 내놨다. 2023년에는 군 내 읍·면의 발전계획 수립, 지난해는 홍성군 마을 만들기 10년 평가 회의 등을 펼치며 주민 주도로 발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형은 지역활성화센터 대표는 “장곡면처럼 면 단위에서 농정계획을 상시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올해 지자체의 ‘농촌공간계획’ 수립 과정에서 면 단위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유럽연합(EU)은 농업정책 계획을 발표한 직후에 다음 계획을 준비해 4∼5년의 논의 과정을 거친다”며 “전담 부서를 만들어 적어도 2년 이상 협의해 계획을 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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