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먹거리 유통산업 탄소감축 로드맵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탄소감축을 위한 먹거리 기후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 발족 예정
국내 유통업체 탄소집약도, 해외 유통업체 대비 2.5~4.4배 높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25. 1. 26
기후위기 속 농업·먹거리 영역 탄소 배출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농민에게만 탄소 감축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반면 먹거리 유통산업 전반의 탄소 배출 문제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
이제야말로 먹거리 유통산업 영역의 탄소 감축 및 전력사용량 감소, 사용하는 에너지의 신재생에너지화 등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고민 아래,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농업·먹거리 영역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전국먹거리연대,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한국YWCA연합회, 여성환경연대 등)가 모여 ‘탄소감축을 위한 먹거리 기후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 준비위원회(준비위)를 발족했다.
준비위는 어떻게 모이게 됐을까? 지난해 3월, 먹거리 유통산업 분야 탄소 배출 문제를 고민하던 농업·먹거리 영역 전문가(이은아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장, 김신효정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전임연구원,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장, 송원규 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정책실장, 허남혁 삶전환연구소장 등)들은 현장 기반 연구팀을 꾸려 국내 대형 유통업체 4군데(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쿠팡)의 탄소배출량 및 탄소집약도(유통업체 총매출을 탄소배출량으로 나눈 수치)를 조사했다. 이와 함께 해외 선진국 유통업체들의 탄소배출량 및 탄소 감축을 위한 자체 노력도 살펴봤다.
연구팀의 이러한 취지에 동의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모임으로써 지난 22일 준비위가 꾸려지게 됐다. 공식적인 네트워크 출범식은 올봄에 열리며, 이후 올해 중 정책 자문회의 및 활동가 정책 워크숍을 거쳐 하반기 정책 제안 캠페인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국내 유통업체들의 탄소배출량은 어느 정도이며, 해외 선진국 유통업체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의 탄소배출량을 보일까? 그리고 국내외 유통업체들은 탄소감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까? 연구진이 조사한 위 내용은 네트워크 준비위 발족식에 앞서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먹거리 유통산업 탄소감축 로드맵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박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주최)’에서 공유됐다.
조사 결과, 먹거리 유통업체 중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세 곳 모두 비(非)재생에너지 전력사용 비중이 높으며, 해당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2020년 기준 117만7000tCO2eq)은 발전(發電)산업 등 에너지산업 영역의 온실가스 배출량(110만7000tCO2eq)보다 약 7만tCO2eq 높게 나타났다. 3개 유통기업 모두 전력사용량-탄소배출량 간 상관관계가 나타났는데, 전력사용량이 늘어날수록 탄소배출량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마트의 경우 2020년 51만7011tCO2eq였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2년 53만8116tCO2eq로 늘어나다 2023년 49만647tCO2eq로 약간 줄었다. 롯데마트는 2020년 23만2542tCO2eq였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1년 22만198tCO2eq로 소폭 줄었다가 2022년 22만6974tCO2eq, 2023년 22만4862tCO2eq로 22만tCO2eq 선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20년 33만8218tCO2eq였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3년엔 31만1340tCO2eq으로 소폭 줄었다. 3개 유통업체들의 전력사용량 중 대부분은 비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이다. 2023년 해당 업체들의 전력사용량 중 비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비중을 살펴보면, 이마트 약 92%, 롯데마트 약 84%, 홈플러스 약 93%였다.
한편 연구진은 쿠팡의 탄소배출량도 살펴봤다. 쿠팡은 앞서 거론한 3대 유통업체와 달리 대형마트는 운영하지 않지만, 대신 쿠팡이 운영하는 물류 운송 체계하의 탄소배출량을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됐다. 쿠팡의 유통사업 영역에서 정확한 먹거리 유통 비중은 분석하기 어려웠으나, 공시자료 상 쿠팡의 2023년 1분기 전체 매출액 9조4505억원 중 식품 판매액(신선식품 제외)은 7조3990억원으로 약 78%를 차지했다.
확인 결과, 쿠팡의 유통사업 운영 과정에서 급속도로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12만3150tCO2eq였던 쿠팡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3년엔 2배 이상 늘어나 26만6681tCO2eq을 기록했다. 특히 쿠팡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유)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 5만9531tCO2eq에서 2023년 17만1873tCO2eq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쿠팡 등 4개 업체의 탄소집약도를 살펴보면, 홈플러스가 5.70으로 가장 높았다(이마트 대비 약 3.4배). 롯데마트의 경우 2020년 3.80이었던 탄소집약도가 2023년 3.92로 점점 늘어났다. 이와 같은 먹거리 유통업체들의 탄소집약도는 삼성생명(탄소집약도 2.2), 하나금융지주(탄소집약도 5.4) 등 일부 금융권보다도 높게 나타났다. 쿠팡의 경우 2023년 탄소집약도는 0.83으로 나머지 3개 유통업체들보단 낮았으나, 상술했듯이 탄소배출량 자체는 급속도로 늘어난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해당 기업들이 탄소배출 문제와 관련해 아예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이마트는 일부 점포 옥상 및 유휴공간 등을 활용해 태양광 발전사업을 진행하고, 롯데마트는 지난해 4월까지 132개 점포에 총 1만5709개의 쇼케이스 도어를 설치해 전력사용량을 설치 이전 대비 약 46.5% 감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쿠팡은 유통단계 감축을 통한 ‘친환경 물류체계 구축’ 및 전기차 통합 배송센터 확대를 표방 중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치만으론 불충분하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연구진이 비교대상으로 선정한 해외 선진국 유통업체 네 곳(미국 월마트, 영국 테스코, 프랑스 까르푸, 일본 이온)의 경우, 국내 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더 구체화된 탄소 무배출(넷제로) 계획 및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100% 달성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 가는 중이다.
물론 해당 유통업체들의 절대적 사업규모가 국내 유통업체들보다 큰 만큼 탄소배출량 자체는 국내 업체들의 그것보다 훨씬 많으나, 적어도 수년 동안 두드러질 정도로 탄소배출량을 줄여온 것 자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테스코의 2023년 탄소배출량(기업 통제범위 내에 속한 기업의 직간접 탄소배출량 기준)은 2015년 대비 약 61.6% 줄어든 90만9062tCO2eq였으며, 일본 이온의 2023년 탄소배출량 161만7407tCO2eq은 2021년 대비 약 46.7% 줄어든 수치다.
위 기업들의 탄소집약도를 국내 기업들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더욱 확연하게 비교된다. 월마트·테스코·까르푸·이온 및 미국 코스트코의 2023년 평균 탄소집약도는 17.45로, 국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2023년 평균 탄소집약도인 66.29보다 확연히 낮았다. 참고로 테스코와 까르푸는 각각 11.54, 14.61의 탄소집약도를 기록했으며, 국내 기업들의 탄소집약도는 △이마트 46.99 △롯데마트 69.11 △홈플러스 82.79였다.
탄소집약도 기준으로 비교해 볼 시, 국내 대형마트들은 해외 선진국 대형마트 대비 2.5~4.4배 높은 탄소집약도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생에너지원으로의 전환 및 냉매의 자연냉매 전환, 냉난방 효율화 등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노력이 아직 해외 유통업체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며, 기업에서 전력사용량 관련 세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구체적 탈탄소화 계획 이행의 투명성도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연구진의 진단이다. 따라서 먹거리 유통산업 영역의 탈탄소화 계획 추진을 위해선, 우선 정확한 탄소배출량·전력사용량 자료부터 투명하게 공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 동참한 김신효정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전임연구원은 “먹거리 유통산업 영역 전반의 전력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환경규제와 지원정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허남혁 삶전환연구소장은 기업만의 독자적 노력뿐 아니라 “집단적 실천을 위한 협력 거버넌스(협치체계)가 필요하다”며 △먹거리 유통산업계 차원의 탈탄소화를 위한 구체적 비전·목표 제시 및 안내서 제작, 교육·정보 제공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모니터링 및 (탄소감축을 위한) 시민참여 프로그램 실시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은 탄소감축을 위한 유통기업의 자발적 활동 유도와 정책적 규제와 관련해 법적 기반 재정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나 「유통산업발전법」, 「식품산업진흥법」 등 기존 법률에 관련 내용을 신설토록 개정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또한 준비위의 활동 추진 과정에서 유통·물류 부문 전반의 먹거리 기후정의 실현 및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외연 확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연 확장 과정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등 유통·물류 영역 노동자들과의 연대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이다. 덧붙여, 온라인을 통한 먹거리 구매·배송이 탄소배출 및 탈탄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추가적 연구·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조선행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녹소연) 지속가능먹거리위원장은 ‘녹색제품 구매 활성화’ 등 녹색유통 실현을 위한 녹소연 차원의 각종 노력을 소개했다. 녹소연은 녹색제품(친환경인증 제품, 저탄소 제품, 친환경농산물, 우수재활용 제품 등) 구매 활성화를 위해 대형유통점, 백화점 등의 녹색제품 전시·판매 상황을 모니터링해 왔고, 그린카드(소비자가 녹색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카드) 홍보 및 소비자 대상 녹색제품 교육도 진행했다. 조 위원장은 “녹색소비자를 적극 발굴해 친환경 녹색유통을 지향하는 소비자로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또한 “온라인 거래를 통해 이뤄지는 택배 전체 과정에서 탄소감축을 위한 노력이 가시화돼야 하며 (어느 정도의 탄소가 배출되는지) 구체적 수치로 표현돼야 할 것”이라며, 먹거리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과포장 문제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다수 참가자가 거론한 ‘기업 책임 문제’와 관련해, 권종탁 전국먹거리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를 향한 정책 및 법제화 촉구 △소비자 교육 및 참여 확대 △기업 감시 및 평가 체계 구축 △공동 구매 및 대안적 유통망(협동조합 및 지역 생산자 중심 유통망) 확대 통한 대기업 의존도 낮추기 △생산품에 대한 공정 가격 책정 및 소농 보호 정책 마련 △다자간(환경단체, 노동운동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의 기업 책임 강화를 위한 연대활동 전개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정부에 촉구해야 할 내용이란 식품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ESG 경영 강화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 그리고 식품안전·환경보호·노동권 보장을 위한 규제 강화 요구 등을 뜻한다. 기업 대상 평가 체계에 있어선 친환경·공정무역·지속가능성 담보 여부 중심으로 기업 경영 실태를 평가하고 공개하는 보고서를 발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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