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소득이 장기간 1000만원대를 맴도는 실정에서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소규모 농가의 농산물 가공 활성화가 꾸준히 언급돼왔다. 하지만 농가의 가공사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산적해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민이 자가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는 ‘농민가공’은 농식품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꼽히지만, 실제 이같은 방식으로 소득을 높이는 농민은 흔치 않다.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농가 중 농축산물 가공에 참여하는 농가는 0.24%에 그쳤다.
윤병선 건국대학교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 보고서를 내고 저조한 가공 참여율의 원인으로 복잡한 규제를 꼽았다.
농가가 농산물 가공사업을 하려면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제조·가공업 등록이나 즉석판매제조·가공업(즉판업) 신고를 해야 한다. 이 중 식품 제조·가공업은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어 소규모 농가가 등록하기는 어렵다. 해썹을 충족하는 시설 구축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를 감안해 권역별로 농산물종합가공센터를 설치하고 농가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간과 공간이 한정돼 다수 농가가 함께 시설을 이용하기엔 어렵다는 문제가 남는다.
즉판업은 해썹 의무가 없고 신고만 하면 영업도 가능하단 장점이 있지만, 농산물을 가공한 영업장과 온라인에서만 판매가 가능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부분의 영업장이 농가 인근에 위치해 소비자 접근성이 떨어지고, 고령농은 디지털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판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규제 개선에 눈을 감은 건 아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즉판업 신고농가의 가공품을 로컬푸드직매장에서 팔 수 있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권고했다. 식약처는 이를 받아들여 전국 6개 로컬푸드직매장에서 즉판업 신고농가의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런 조치에 대한 현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경남 함안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강혜자 연자연농장 대표는 인근 로컬푸드직매장에 김치를 납품한 뒤로 매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강 대표는 “식품 제조·가공업은 기준에 맞는 시설을 유지하기 어려워 즉판업으로 영업 신고를 했지만, 영업점·온라인 판매 방식 모두 접근성이 떨어져 큰 매출을 올리지는 못했다”며 “직매장 판로가 열리면서 종전보다 매출이 5배 가까이 늘었다”고 전했다.
다만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여전히 농민가공품의 직매장 판매를 제한하고 있어 보다 과감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2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정책 효과에 따라 시행규칙 개정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소규모 농민가공식품을 ‘식품위생법’의 예외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농가·전문가·정부부처의 논의를 거쳐 오염이나 부패 가능성이 낮은 가공품을 선정하고, 이를 직매장에서 판매할 경우 ‘식품위생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소규모 농민가공만을 위한 법률 제정을 제안했다. 윤 교수는 “기업적 식품 가공은 재료·가공품 유통 등을 하는 과정에서 식품안전 위험요소가 많아 ‘식품위생법’과 같은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소규모 농민가공은 자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 직거래로 팔기 때문에 기업적 가공의 틀을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기업적 식품 가공과 소규모 농가 가공을 분리해 규정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소농식품법(Cottage Food Law)’을 제정해 잼·건조농산물 등 잠재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가공식품을 등록·허가 없이 자유롭게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와이오밍주는 잠재 위험이 없는 가공식품의 제3자 판매까지 허용하는 등 폭넓은 규정을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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