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돌며 배추와 무, 감자 등을 유통하는 산지유통인 정모씨(54)는 최근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한 배추 농가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배추를 출하시켜줄 수 있느냐’가 통화내용의 주였다. 정 씨는 “본격적인 수확을 앞둔 요즘 이런 전화를 자주 받는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정씨가 밝힌 이유인 즉슨 ‘지난해 시세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정 씨는 “농가들 사이에선 한해 시세가 좋지 못하면 다음해는 시세가 좋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며 “전화가 온 이 농가 역시 지난해 배추 시세가 좋지 않았고, 올해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행사도 있어 시세가 좋을 것이라 여기고 올 초 계약재배를 하지 않았던 농가였다”고 설명했다.
이 내면 농가처럼 산지에선 2년 연속 시세가 좋지 못하게 흐르면서 판로 확보에 비상이 걸린 농가들이 부지기수라는 전언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포전거래 등의 계약거래가 주인 배추와 무, 대파, 감자 등의 작목 농가들이 이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농가들이 올해 시세가 좋을 것이라고 예견한데에는 지난해 출하기 낮은 시세와 더불어 배추와 무 등 다수 작물의 올 여름과 가을 재배면적이 줄어들 것이란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세 약세로 인해 여름 고랭지와 가을 물량의 재배면적이 줄어들 것이란 발표를 듣고 물량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라 예견한 것. 여기에 여름 월드컵과 가을 아시안게임 등 여러 행사가 예정돼 있으면서 소비심리도 살아날 것이라 예상했고, 계약 당시의 낮은 시세도 계약을 하지 않은 농가들을 늘리는 원인이 되게 했다.
불행히도 이러한 농가들의 예상은 빗나가면서 가을 수확철에 이르러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농가들이 발만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낮은 시세가 산지유통인과 유통업계의 소극적 행보를 이끌고 있기 때문. 더욱이 올해 세수확보 차원에서 화물차량의 적제적량 단속이 강화되면서 예년에 비해 산지에서 나가는 출하 물량 비중이 줄어든 것도 농가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산지유통인은 “주산지 인근의 톨게이트를 보면 알겠지만 적제적량 단속이 올해 유독 심해지고 있다”며 “시세도 안 나오고 많은 양을 실어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무리해서 계약 안 한 물량까지 거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에 산지에선 공동 판로 및 직거래 활성화 등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계약을 하지 않았던 산지의 한 배추 재배 농가는 “시세차익을 노려 계약을 하지 않은 것은 우리 잘못이고 판단미스지만, 이런 농가들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길이 마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올해는 물론 내년 이후 농사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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