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TRQ·할당관세] (하) 낮아진 관세로 수입 의존도 높아져
소수 국가 수출 독과점구조
지배력 강화되면 단가 올려
외국산 값하락 예상 빗나가
물가안정 효과는 거의 없고
자급률 떨어지는 등 부작용
농가 경영 안정화 대책 시급
농민신문 김소진 기자 2025. 1. 12
‘저율관세할당(TRQ)’ ‘할당관세’로 대변되는 농산물 수입 의존 정책이 물가안정 효과는 없고 되레 식량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전문가들은 공공비축 등 수급관리를 강화하고, 수입정책이 물가안정과 생산기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물가안정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농산물 수입 확대 카드가 실제 가격안정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얼마나 될까.
문한필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농업·농촌의 길 2024’ 심포지엄에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감축되면 수입 가격이 그만큼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실제 통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는 원인으로 글로벌 농산물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꼽았다. 세계 농산물 시장은 다양한 국가가 경쟁하는 시장이 아닌 소수의 국가가 수출을 독점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수출국은 시장 진입 초기에는 낮은 단가로 거래하지만, 수입국 내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면 수출단가를 서서히 올린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산 쇠고기 관세는 낮아졌지만,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단가는 빠르게 상승했다. 한·미 FTA 체결 전 40%였던 미국산 쇠고기 관세는 2018년 21.3%, 지난해 5.3%까지 떨어졌다. 내년에는 0%로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다.
하지만 국내 수입단가는 미국 내 쇠고기 소매가격보다 가파르게 올랐다. 미국산 쇠고기 1㎏당 수입단가는 FTA 발효 첫해인 2012년 4.94달러에서, 10년째인 2021년 8.38달러로 69.6% 인상됐다. 같은 기간 미국 내 쇠고기 소매가격은 1파운드당 498.6센트에서 724.9센트로 45.4% 오르는 데 그쳤다.
수입정책은 최근 ‘국산보다 비싼’ 외국산 농산물까지 대거 도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정부는 TRQ 양파 5000t을 조생종 양파 수확기인 4월 시장에 풀었다. 같은 해 4월30일 기준 수입 양파 상품은 1㎏당 1724원으로 국산 상품(1252원)보다 비쌌다. 이에 농민들은 ‘수입을 위한 수입’만 남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렴한 농산물을 낮은 세율에 들여와 물가안정을 이끌겠다는 최소한의 방향성마저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수입 일변도 정책은 국내 생산기반만 무너뜨리고 있다. 대두가 대표적이다. 487% 관세가 부과되던 대두는 세계무역기구(WTO) TRQ 체결로 5% 저율 관세를 적용받는다. 이렇게 낮은 관세로 도입되는 기본물량만 연 103만2152t에 달한다. 쏟아지는 수입 대두에 생산기반은 속수무책으로 와해됐다. 국내 콩 재배면적은 WTO가 출범한 1995년 10만5035㏊에서 2023년 6만7671㏊로 35.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경지면적이 198만5000㏊에서 151만2000㏊로 23.8% 줄어든 것보다 감소세가 더 가파르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2023년 이슈보고서에서 “국내 자급률이 낮다는 이유로 저율의 TRQ가 끊임없이 들어온다”며 “이렇게 수입 의존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과연 자급률이 증가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정부가 수입정책에만 의존한 채 산지에 필요한 수급대책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병덕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2022년에 풍년으로 생산량이 급증해 다른 지역보다 조생종 양파가 조금 늦게 나오는 전남 무안·함평·영광 등의 생산 물량 7000t에 대한 출하 연기 조치를 정부에 건의했다”며 “건의한 지 2주를 훌쩍 넘어서야 정부의 허가가 나 일부 농가는 그사이 울며 겨자 먹기로 3.3㎡(1평)당 4000원 정도에 양파를 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수급 조절 역할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권혁정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공공비축용 물량을 확보해 가격이 폭등할 때 시장에 방출해서 안정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가 지난해 8~9월경 마늘 3000t가량을 공공비축 수매하고, 약 1000t을 수급 조절 명목으로 사용한 선례가 있다”고 제안했다.
TRQ·할당관세를 무분별하게 확대하기보다 물가와 국내 생산에 미칠 영향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TRQ는 수입국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치인데 이를 우리 스스로 깨부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농민의 소득률이 하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마늘·양파 등 소득 작목에 TRQ·할당관세가 남용된 것은 특히 큰 문제”라면서 “엄밀한 영향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땐 수입을 하지만, 떨어질 때 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라면서 “정부의 제1 농정 목표는 농가의 경영·소득을 안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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