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산물 공정가격제 도입해야
한국농정신문 2025. 1. 12
2024년산 공공비축용 벼 매입 가격이 40kg 기준 6만3510원(포대벼 1등급)으로 확정됐다. 전년 대비 6610원 떨어졌으며, 쌀값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후 45년 만에 최대 폭락이라던 2022년 6만4530원보다 못한 가격이다. 기후재난으로 수확량은 감소하고 생산비는 폭등한 상황에서 가격마저 형편없으니, 농민의 생계위협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쌀값뿐만 아니라 대다수 농산물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농업소득이 3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농업소득은 2023년 1114만원, 1994년 1032만원이니 1년에 3만원도 채 오르지 않았다. 같은 기간 물가가 2배 이상 오른 점을 감안하면 반토막 난 셈이다. 노동과 생산수단을 투입하고도 가격이 생산비에 미치지 못하니 ‘이대로면 파산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소득이 안정적이지 못하니 농업 포기로 이어지고,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니 먹거리 해외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는 각종 자급률로 가늠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간한 ‘2023년 양정자료’에 따르면 2022년 식량자급률은 49.3%,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2.3%로 집계됐다. 1990년 식량자급률 70.3%, 곡물자급률이 43.1%였던 점을 감안하면 약 20%p 하락한 것이다. 논리의 비약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농산물 가격 보장을 통한 소득안정과 각종 자급률의 상관관계는 상당하다 하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KREI 농정포커스, 농산물 시장개방화와 물가, 그리고 향후 과제)에 따르면 자급률은 물가안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 품목들의 자급률과 가격의 상관계수를 보면, 쇠고기, 돼지고기, 대두, 보리 등은 음(-)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자급률이 감소했을 때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국내 물가안정을 위해서 국내 자급기반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8일 양곡관리법 등 농업 민생 4법이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생산자 이익 보호’와 ‘적정가격 유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생산비를 넘어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공정가격 개념이 그것이다. 나아가 식량자급률을 제고하는 것 또한 법의 목적에 포함됐다. 농민들이 계속해서 쌀을 비롯한 양곡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하는 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런 양곡관리법 개정의 근본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농민 탓하고 재정 타령하면서 무조건 거부한 정부와 국민의힘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정가격제는 다중위기에 처한 농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농업생산 비용을 온전히 보전하는 가격제도이다. 현장 농민의 지혜가 모여 만들어진 개념이기도 하다. 농민에게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에 드는 예산은 결국 농업·농촌·농민을 살리는 예산인만큼 정부도 제도 도입에 의지를 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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