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 정신은 실종되고 권력투쟁만 남을 농업계 미래 섬뜩
금융은 ‘모피아’, 경제는 ‘농피아’의 관치 놀이터 전락 우려도
팜인사이트 김재민 기자 2026. 3. 13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농협 개혁안은 겉으로는 혁신과 투명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농업계에 극단의 갈등과 관치(官治)의 망령을 불러올 ‘예고된 미래’를 담고 있다. 이번 조치는 농협의 주인이 농민이라는 협동조합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고, 농업계를 정치판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농협중앙회장 선거 방식의 변화가 불러올 농민단체의 정치 세력화와 분열이다.
과거 조합장들이 선출하던 체제에서는 서로의 면면을 아는 제한된 풀 안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앞으로 204만 명 규모의 전체 조합원이 1표씩 행사하는 직선제나 대규모 선거인단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 조합장들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대규모로 늘어나면 결국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이나 거대 조직의 지원을 받는 이들이 선거판을 주도하게 된다.
현재 우리 농업계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진보·좌파 성향의 전국농민회 등이 주축이 된 ''''농민의 길'''', 중도 보수 성향의 한농연 등 종합단체가 모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종협)'''', 그리고 실용을 내세우는 품목 단체 중심의 ''''농축산연합회''''다.
지금까지 농협을 견제하고 지도하던 이 단체들은 향후 중앙회장 자리를 직접 노리는 권력 집단으로 포지셔닝을 바꿀 것이다. 은퇴 후 귀농을 빌미로 조합원 자격을 취득한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출신들까지 이 자리를 넘보게 될 판국이다.
이 삼분화된 단체들은 각자의 진영에서 중앙회장을 배출하기 위해 정당처럼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이다. 중앙회장 선거 자체는 규제로 인해 돈을 쓰기 어려워지겠지만, 역설적으로 각 연합회의 대표 자리가 대선 후보와 같은 위상을 갖게 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전 선거운동과 돈봉투가 오가는 탁한 풍경이 연출될 수 있다.
특정 진영이 회장을 배출하면 소속 단체장들에게 전리품을 나누듯 논공행상을 벌일 것이고, 패배한 진영은 다음 선거까지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농업계를 끝없는 분열의 늪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렇게 선출된 중앙회장의 권한과 위상의 철저한 불일치다.
만약 204만 명의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직선제가 치러진다면, 이는 일반 시·군 지자체장 선거를 압도하는 거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막대한 상징성을 가진 회장을 아무 실권이 없는 명예직으로 주저앉히겠다는 것이 이번 개혁안의 핵심이다.
현 정부와 정치권이 처음부터 농협을 장악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이번 개혁안을 내놓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잇단 비리와 금권선거를 근절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나름의 선의에서 출발한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당초 의도와 무관하게, 새롭게 짜인 제도가 만들어낼 결론적 흐름은 매우 위험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허울 좋은 거대 직선제는 필연적으로 농업계를 끝없는 권력투쟁의 장으로 내몰 것이다. 동시에 선출된 회장의 실권은 통제하면서, 농식품부와 금융위 등 정부 위원과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신설 통합 기구인 ''''농협감사위원회''''를 통해 중앙회를 넘어 지주 및 자회사까지 정부의 관리·감독을 확대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결국, 이 ‘권한 없는 회장’이라는 공백은 관료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선출된 회장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사이, 농협의 핵심 줄기인 금융지주는 기재부 출신의 ''''모피아''''가, 농축산물 유통과 경제 사업을 담당하는 경제지주는 농식품부 출신의 ''''농피아''''가 장악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다. 이는 농협을 공무원과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는 ''''관치 놀이터''''이자 정책 하부 기관으로 전락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의 주인이 농민이라는 상식마저 부정당하는 이 ''''예고된 미래'''' 앞에서 우리 농업계는 통렬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설령 정치권에 농협을 장악하려는 나쁜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 뻔히 보이는 부작용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독한 무능이다.
거대해진 선거판이 누구보다 ''''협동''''해야 할 농업계를 갈가리 찢어놓고, 농민들을 끝없는 갈등과 분열의 늪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 생각조차 못한 것인가. 그 결과가 농민을 철저한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공무원과 정치권이 실질적으로 장악해 버린 기형적 조직을 낳는다면, 우리는 이를 과연 농민의 조직, ''''농협''''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