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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원산지 혼합 표기’ 국내산 써놓고 보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11-07 조회 1720
첨부파일 20231106500655.jpg
* ‘오늘 점심때 먹은 김치는 중국산일까 국내산일까?’ 원산지 혼합 표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식당에서 국내산과 외국산을 섞어 쓴다고 표기한 후 국내산 식재료를 극소량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 행태가 만연해서다. 사진은 식재료의 원산지를 혼합 표기한 한 중식당의 표시판.



          농관원 단속 현장 동행해보니 

          안성, 화성, 군포 일대 식당 점검 

          비율 높은 순서 2개국까지 표시 

          국내산 사용 안하는 업체 허다


                                                                           농민신문  이문수 기자  2023. 11. 6


 식재료 원산지를 국내산과 외국산으로 혼합 표기하고 실제 국내산 사용 비율이 극소량이거나, 아예 외국산만 쓰는 행태가 외식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추김치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를 ‘국내산과 외국산’을 섞어 쓴다고 표시했는데 실제 외국산만 사용하는 식이다. 고객의 신뢰를 얻으려 거짓으로 혼합 표기를 하는 업체가 늘어날수록 국내산 농산물의 판로가 좁아져 결국 농민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다 믿을 만한 국내산 식재료를 쓰는 음식점을 찾는 소비자의 알권리도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최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과 함께 안성·화성·군포 일대 식당을 돌며 원산지 혼합 표기 실태를 살펴봤다.


◆원산지 혼합 표기 식당에 국내산은 없었다=10월말 오후 2시 경기 화성의 유명 관광지인 대부도의 한 중식당. 이곳은 각종 매체에 여러차례 소개됐을 정도로 유명세를 탄 식당이다. 점심때가 지난 터라 내부는 비교적 한산했다. 농관원 경기지원 수도권농식품조사팀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식당 주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사원은 원산지표시판부터 찾았다. 국내산만 쓰는 돼지고기를 제외하고는 쌀(국내산·미국산), 김치용 고춧가루(중국산·국내산), 콩가루(국내산·중국산)는 국내산과 외국산을 섞어 쓴다고 적혀 있었다.

조사원이 창고 안에서 수북하게 쌓여 있는 고춧가루 포대를 발견했다. 원산지를 살펴보니 포대마다 ‘중국산’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중국산과 국내산을 모두 쓴다고 해놓고 국내산은 아예 들여놓지도 않은 것이다.

식당 주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얼버무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근 농가에서 고춧가루를 사서 김치를 직접 담갔거든요. 그런데 재료값이 너무 많이 올라 얼마 전부터 식자재유통업자에게 납품받고 있어요. 업자 얘기론 중국산하고 국내산을 섞은 걸 준다고 했는데 100% 중국산인 줄은 전혀 몰랐다니깐요.”

이처럼 원산지 혼합 표기의 허점을 파고들어 이득을 취하려는 외식업계 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국밥 전문점에서는 납품받은 중국산 배추김치 원산지를 국내산과 중국산으로 혼합 표기해 9월21일 주인이 형사입건됐다.

고기 전문점에서도 다수 적발됐다. 시흥에 있는 삼겹살 전문점에서는 칠레산 돼지고기만을 사용하면서 원산지표시판에는 국내산과 칠레산으로 적었다. 농관원은 8월28일 소비자에게 혼돈을 준다며 주인을 형사입건했다.

한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송파구의 뷔페 음식점에서 국거리용 쇠고기 원산지를 국내산·호주산·미국산 세곳으로 썼지만 실제로 호주산만 사용해 8월9일 적발됐다.


◆소비자 혼동…국내산 사용 업체만 오히려 피해

외식업체가 거짓으로라도 ‘국내산’을 표시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서울의 한 대형 예식장 관계자는 “외국산 식재료만 있으면 고객에게 ‘음식 질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오기 마련”이라면서 “아무래도 원산지에 ‘국내산’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신뢰감을 줄 수 있어 거짓으로라도 혼합 표기를 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무엇보다도 ‘원산지표시법’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다.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원산지가 다른 동일 품목을 혼합해 사용했을 때는 혼합 비율이 높은 순서로 2개 국가까지의 원료 원산지를 표시하게 한다. 그런데 혼합 비율은 알려야 할 의무가 없어 국내산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국내산을 극소량만 써도 원산지에 ‘국내산'을 표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 농축산위생품질팀에 “식당에서 중국산 고춧가루 99%, 국내산 고춧가루 1%를 써도 원산지에 ‘국내산’이라고 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사용량이 매우 적더라도 국내산을 사용한 이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제도상 허점에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일주일에 3번 정도 외식을 한다는 이재원씨(40·경기 부천시 소사구)는 “원산지에 국내산과 외국산을 같이 쓴다고 돼 있으면 국내산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정말로 들어가기는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국내산을 조금만 쓴다거나, 단속을 피하려 국내산 원재료를 갖고만 있고 쓰지 않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농업계와 소비자단체에서도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서영석 전국한우협회 유통사업국장은 “현재 원산지 혼합 표기 방식이 한우 유통 질서를 완전히 흩뜨려놓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육수만 한우를 쓰고 갈비와 도가니·꼬리는 외국산을 사용하고선 버젓이 ‘한우곰탕’이라고 홍보하는 식당이 한둘이 아니다”면서 “혼합 표기 허점 탓에 국내산 한우 식재료만을 고집하는 곳은 오히려 역차별받고, 외국산을 주로 쓰는 곳은 ‘면죄부’를 받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소비자단체는 소비자에게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지금의 원산지표시 방식이 소비자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혼합 표기를 포함해 현재 원산지표시제도로는 내가 선택한 음식에 들어간 재료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알기 어렵다”면서 “원산지표시는 산업 측면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내산을 일부만 사용하고도 마치 모든 재료가 국내산인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드는 행태가 판치는데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원산지 혼합 표기는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원산지 정보를 알려줄 수 없을뿐더러 국산 농산물의 판로를 넓히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농산물을 섞어 쓰더라도 어느 정도 비율인지를 공개해 소비자와 농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농식품부...지도 단속 ‘느슨’

상황이 이런데도 원산지 혼합 표기 개선에 농식품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공식품과 달리 일반 음식점은 품목제조보고서나 고정된 조리법이 없기도 하거니와, 음식을 조리할 때마다 재료 배합 비율이 빈번하게 바뀌는 탓에 식재료 혼합 비율을 기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원산지표시제도에) 과도한 규제가 들어간다면 사회 전체 편익이 줄고, 단속과 처벌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도와 단속도 느슨하다. 국내산과 외국산 혼합 표기를 악용하는 업체가 계속 늘고 있는데도 농관원에서는 실태 조사하거나 업체 단속에 나선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말 단속 과정에서는 방문한 식당 중 한곳이 원산지 혼합 표기가 잘된 안내판과 잘못된 안내판을 동시에 걸어놨는데도 별다른 조치 없이 계도하는 것에 그쳤다.

원산지 혼합 표기가 유명무실해진 이유로 단속 인력 부족도 꼽힌다. 실제로 농관원의 한 관계자는 “소수 인력으로 다수 원산지표시 대상 업체를 관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함께 단속에 나선 농관원 경기지원의 ‘원산지표시 전담 단속 인원’은 46명에 불과하다. 경기지원이 담당하는 서울·경기·인천 지역 업체가 70만곳(음식점 42만곳, 판매·제조 업체 28만곳)임을 고려하면 단속 직원 1명당 1만5200곳 넘게 살펴봐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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