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사과·배 품목 시작으로
현재 67개까지 보장 늘렸지만
가입률 49.4% 불과, 갈 길 멀어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2022. 5. 20
농작물재해보험은 자연재해로 인해 농가가 경영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운영하는 정책보험이다. 2001년 사과, 배 2개 품목으로 시작, 2022년 현재 67개로 늘었다. 가입농가 수도 꾸준히 증가해 2021년 기준 49만7884호가 보험에 가입했으며, 보험 가입률도 49.4%(가입면적/대상면적*100)까지 상승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빈발하면서 농작물 피해가 증가하자 재해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농가의 인식이 높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절반 이상의 농가가 보험의 사각지대에서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67개 품목을 가입대상으로 지정해놓고 품종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가입을 제한,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농가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보여주기식’ 품목 확대보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농업생산액의 91.3%가 가입 대상이라고?
고랭지·월동배추로 품종 제한
가을배추는 보험가입 못해
양배추는 제주지역서만 가능
“손해율고려 위험품종 배제” 지적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현재 전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수요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다음달 24일까지 진행되는데 조사 대상은 두 가지다. ①소규모 재배작물 중 신규 도입 수요가 있는 품목과 ②일부 지역에서만 사업을 운영 중이어서 대상지역 확대가 필요한 품목.
농식품부는 지난 15일 보도자료에서 “2022년 현재 농업생산액의 약 91.3%를 차지하는 67개 품목을 대상으로 재해보험을 운영 중”이라면서 “현장에서는 보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소규모 재배작물을 중심으로 대상품목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품목은 67개지만, 생산액 측면에서 봤을 때는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90%가 넘는다는 건데 정말 그럴까?
예를 들어 보험대상품목인 배추의 경우 적용대상은 고랭지배추(정선, 삼척, 태백, 강릉, 평창)와 월동배추(해남)로 한정되어 있다. 재배면적이 1만ha가 훌쩍 넘는 가을배추는 가입 대상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1만3345ha에 달한다. 전남이 3226ha(24.1%)로 최대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충북 2304ha(17.3%), 경북 1712ha(12.8%), 강원 1445ha(10.8%), 전북 1296ha(9.7%), 충남 1211ha(9%), 경기 1185ha(8.9%) 순이다. 전국에 걸쳐 골고루 재배되고 있는 품종임에도 보험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양배추는 주산지가 제주도와 전남, 강원도에 걸쳐 있지만 보험 대상지역은 제주도로 국한돼 있다. 2021년 전국 양배추 재배면적은 8675ha로 이 중 제주도(3017ha)가 34.8%, 전남(무안, 해남 등 2567ha)이 29.6%, 강원도(1592ha)가 18.4%를 차지한다. 전남과 강원도의 재배면적이 결코 작지 않은데도 보험혜택에선 소외됐다.
전남도 식량원예과 정중기 주무관은 “가을배추나 양배추의 경우 전남이 주산지임에도 불구하고 가입이 불가능해 품종이나 지역 제한을 풀어달라는 농가의 요구가 해마다 나오고 있다”면서 “재해대상품목으로 지정해놓고 특정 품종에 제한을 두는 것은, 보험사의 손해율을 고려해 재해에 취약한 품종은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농식품부의 농작물재해보험 사업시행지침을 보면, 보험사업자(NH농협손해보험)가 보험대상 농작물이라 하더라도 보험화가 곤란한 특정품종·특정재배방법·특정시설 등에 대해서는 농업정책보험금융원과 협의해 보험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보험인수를 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한쪽에선 예산 삭감하면서 품목 확대? 지적도
정부 가입률 제고 의지 있다면
예산 확대·근본적 제도개선 필요
상황이 이렇지만, 농식품부가 올해 사업지역 확대를 생각하고 있는 품목은 ‘봄감자·고랭지감자·밀·고랭지배추·고랭지무·단호박·대파'' 등 7개 품목에 그친다. 보험 도입이 3년 이상된 품목 중 손해율 및 가입실적이 양호한 품목을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봄감자는 경북과 충남, 고랭지감자는 강원, 밀은 광주·전북·전남·경남·충남, 고랭지배추는 강원 정선·삼척·태백·강릉·평창, 고랭지무는 강원 홍천·정선·평창·강릉, 단호박은 경기 연천, 대파는 전남 신안·진도로 사업지역이 제한돼 있다. 농식품부는 기초자치단체 기준 재배농가수가 최소 70호 이상이고, 생산액이 최소 25억원 이상(또는 재배면적이 최소 25ha이상)인 경우 광역자치단체를 통해 서류가 제출되면 검토를 거쳐, 사업지역으로 편입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 유정연 서기관은 “7개 품목은 현장에서 확실하게 보험수요가 있는 품목들로, 저희가 제시한 최소 요건만 충족되면 사업지역에 다 포함시킬 계획”이라면서 “제도의 안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위험도가 높아 손해율이 불안정한 품종을 포함시키는 것은 어렵다. 다만, 사업지역 확대 수요조사는 매년 실시할 계획이기 때문에 올해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내년에는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이수미 연구기획팀장은 “67개 품목이 보헝대상품목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전국단위로 가입되는 것이 아니어서 비주산지 농민들의 경우 역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가입하고 싶어 하는 농민들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우선 67개 품목에 대해서는 지역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팀장은 최근 추경에서 정부가 농작물재해보험 예산을 1000억원이나 삭감한 것을 두고, “정부가 한쪽에선 예산을 삭감하면서, 한쪽에선 품목을 늘리겠다고 수요조사를 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고, “정부가 가입률을 높이려는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면 예산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팀장은 “예산을 그대로 두고 가입농가만 늘리게 되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보장률을 낮추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농가의 경영안정과 재생산 보장이라는 농작물재해보험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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